<르포> 재고가 생활이 되다
‘재고(在庫) 비즈니스’가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뜨고 있다. 재고란 기업이 수요를 예측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 위해 보유하거나, 수요 예측에서 빗나가 팔지 못해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을 뜻한다. ‘이코노미조선’은 후자인 ‘판매 부진으로 발생한 재고’ 개념에 초점을 맞춰, 재고 비즈니스를 기획했다. 그동안 재고 시장은 저품질·비인기 상품을 값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기업은 재고가 생겨도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재고 시장을 외면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변수가 발생했고, 판매 부진을 겪는 기업의 창고에 재고가 급격히 쌓이고 있다. 단순히 생산 후 정가로 판매하는 일반 유통 시장만을 바라본다면 코로나 시대에 지속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재고를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기업들은 ‘계획 생산’ ‘재고 제로(0)’ 등을 목표로 하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틈을 타 재고, 리퍼브(refurbished·반품·전시 제품을 손질한 상품)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제조사의 브랜드 가치를 최소화하는 유통 방식을 무기로 한다. 나아가 재고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드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편집자 주]
이날 방문한 프라이스홀릭은 ‘리퍼브(refurbished·반품·전시 제품을 손질한 상품)’ 전문점이다. 구매자의 단순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이나 제조·유통 과정에서 미세한 흠집이 난 제품, 전시 제품을 손질해 재판매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이나, 이월 또는 재고 상품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제품의 성능은 정상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격은 정상가 대비 최소 10%, 최대 80% 저렴하다. 온라인 최저가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해 ‘갓성비(god과 가성비의 합성어)’ 제품으로 불릴 만했다. 자취생, 학생들부터 쑥쑥 커가는 아이를 둔 부부, 생활비 절약을 원하는 살림꾼까지, 매장을 찾은 소비자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프라이스홀릭 쇼핑은 ‘보물찾기’와 다름없었다. 노트북, 히터 같은 소형가전부터 생활용품, 유아용품, 화장품, 의류, 신발, 캠핑용품 등 제품군이 다양했다. 일본의 유명 잡화점 ‘돈키호테’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구르트 제조기, 발 마사지기, 에르메스 슬리퍼까지 평소 쉽게 보기 어려운 상품도 발견했다. 매장에서 만난 이진(여·52)씨는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어서 소소한 재미가 있다"며 "유명 브랜드 의류인데도 반값에 구매해 기분이 좋다"고 했다.
프라이스홀릭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인기 상품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나면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품이 남아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잇따라 방문한 롯데아울렛 이천점 ‘올랜드’는 프라이스홀릭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대형가전과 가구를 판매해 하이마트와 한샘 매장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삼성전자, LG전자 TV와 냉장고는 물론 위니아 에어컨, 김치냉장고와 침대, 식탁 등 한샘 브랜드 가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거짓말 같은 가격이 쏟아진다. 흠집 하나 있다고 못 쓰는 거 아니지 않나" 매장 내 흘러나오는 노래가 쇼핑의 흥을 돋웠다.
리퍼브·재고 전문 매장인 올랜드의 경쟁력 역시 가격이다. 이날 매장에선 134만원짜리 삼성전자 일반형 냉장고(525L)를 33% 할인한 89만원, LG전자 70인치 UHD TV를 44% 할인한 17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품이 멀쩡해 흠집이 난 상품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방정희 지점장은 "가전제품은 해외에서 재고로 남아 들여오는 경우가 많고, 가구는 전시 제품이 많다"며 "구매 후 문제가 생길 경우 가전은 6개월, 가구는 1년 동안 무상수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올랜드는 최근 들어 쿠팡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서 반품된 식품, 생필품 등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음료수, 즉석밥, 라면, 휴지 등 다양하다. 주로 단골손님이 찾는다. 이날 식품 판매대에서는 제품을 정리하는 직원에게 "오늘은 뭐가 들어왔냐"고 묻는 손님이 많았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매장을 찾는다는 박정신(여·45)씨는 "내가 원하는 제품이 있을 때는 득템을 넘어, 선물 받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리퍼브·재고 매장은 올해 기준 2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랜드의 2019년 매출은 전년보다 30%가량 증가한 6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약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국내 재고 및 리퍼브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일부 리퍼브 매장은 대다수 제품에 할인 이유가 적혀 있지 않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유통기한이 적혀 있어 확인 후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있지만, 이유가 쓰여있지 않은 제품은 어느 부분에 하자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불안감이 들었다.
국내에서 흠집이 나거나, 반품 또는 단종 제품 등을 할인 판매하는 ‘알뜰코너’를 운영하는 이케아의 경우, 매장 내 제품에 ‘손상제품 최대 60% 할인’ ‘단종 예정 제품 최대 80% 할인’ 등 제품 할인 이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자와 소파 같은 경우는 판매하는 제품인데도 고객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 상품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알뜰코너 매장이 계산하는 곳 옆 구석으로 빠져 있어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이케아 기흥점에서 만난 정명훈(40)씨는 "이케아에 올 때마다 알뜰코너에 들른다"며 "가격은 무척 마음에 드는데, 필요한 상품이 없거나 망가져 있는 경우가 있어서 못 사고 아쉽게 집에 간다"고 말했다. 알뜰코너에서 선반을 구입한 강예린(29)씨는 "다른 제품은 들고 가기 편하게 분해돼 있는데, 알뜰코너 상품은 직접 분해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plus point
재고 상품 잘 사는 법
노하우 1│다 같은 상품이 아니다. 재고 종류를 파악하라.
재고 전문몰에서 판매하는 재고 상품은 크게 새 상품, 리퍼브, 반품 재고가 있다. 리퍼브·반품의 경우 흠집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가능하다면 테스트 매대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노하우 2│가전제품은 출시 시기를, 식품은 유통기한을 파악하라.
가전제품은 모델명과 출시 시기를 확인해야 한다. 최신 제품과 사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 상품을 살 수 있다. 식품을 구매할 때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확인하라. 유통기한이 임박했더라도 소비기한이 충분히 남아있다면 구매해도 괜찮다.
노하우 3│애프터서비스(AS) 기간과 반품 가능 여부를 파악하라.
재고 상품의 경우, AS 기간이 일반 제품보다 짧을 수 있다. 또 식품이나 컴퓨터 운영체제 등은 개봉 후 반품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잘 살펴야 한다.
노하우 4│인터넷 최저가와 배송료를 꼼꼼하게 살피라.
인터넷 최저가와 배송료를 비교해보며 쇼핑하라. 가격은 저렴하더라도, 배송료가 비쌀 수 있다. 매장과 거주 지역의 거리가 멀어지면 배송료가 더 비싸지는 경우도 있어서 가격 비교를 꼼꼼히 하는 게 좋다.
노하우 5│인기 상품을 사려면 소셜미디어(SNS)를 주목하라.
재고 상품도 인기 상품의 경우 수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재고 매장에서 자사 SNS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상품 입고를 안내할 때도 있어 이를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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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비즈니스] ③<르포> 재고가 생활이 되다
[재고 비즈니스] ④<케이스 스터디> 역물류 전문 기업 美 ‘옵토로’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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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비즈니스] ⑥<Interview> 재고 쇼핑몰 ‘리씽크’ 김중우 대표
[재고 비즈니스] ⑦<Interview>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재고 비즈니스] ⑧재고로 새 가치 만든다
[재고 비즈니스] ⑨재고 해결하다, 기업들 착해졌다
[재고 비즈니스] ⑩<Interview> 권오경 인하대 경영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December 03, 2020 at 03: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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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같은 리퍼브 쇼핑…‘갓성비’로 인기 끈다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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