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이 떨어졌을 때 다른 작물에 비해 인삼이 더 문제인 건 주력 제품인 6년근 인삼을 키우는 데 7~8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뿌리기 1~2년 전부터 토양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10년 가까이 공들인 작물을 헐값에 넘기려면 농민의 가슴은 찢어집니다. 요즘 각 지역 인삼농협 조합장들이 농가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게 일상인 배경입니다. 수매를 더 해달라는 겁니다. "그런 거 하라고 조합이 있는 것 아니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조합장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조합도 제 코가 석 자이기 때문이죠. 지금 각 조합들은 이미 창고에 보유하고 있는 인삼(홍삼) 재고만으로도 골머리가 아픕니다. 농민들을 돕겠다고 섣불리 수매에 나섰다가는 재고만 더 늘어 나중에 더 큰 손실을 입으면서 책임론에 휩싸일지도 모릅니다.
정부도 나서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작물과 달리 인삼은 긴급수매 대상 품목이 아닙니다. 인삼은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쌀이나 배추, 무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결국 무언의 압박에 농협중앙회가 긴급수매 지원에 나섰습니다. 그 덕분에 인삼 농가들은 숨통이 트일 전망입니다. 그런데 인삼 가격이 조금 안정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입니다.
1500년 역사의 고려인삼이 현재 안고 있는 핵심 문제는 소비자들이 예전처럼 인삼을 찾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공급 물량 조정이 이뤄지면서 시장이 균형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임시방편으로 가격이 안정을 찾으면 그나마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하려던 생산 조정도 물거품으로 돌아갑니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남이 하겠지 하면서 자신의 삼밭은 줄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인삼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줄어드는데도 생산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재고만 누적됐습니다. 우리나라 인삼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인삼공사가 보유한 재고만 1조3000억원어치에 육박합니다. 각 지역조합까지 포함한 국내 총 인삼 재고는 2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연간 인삼 생산액이 대략 8000억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불균형입니다. 다른 산업이 이 정도였으면 이미 붕괴되지 않았을까요.
인삼은 여러 가지 특수한 사정이 있지만 원래 전매사업이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질 것입니다. 민영화가 됐다고 하지만 한국인삼공사의 독점적 지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압도적인 시장 장악력 때문에 시장에서 유효한 경쟁이 벌어지기 어렵습니다. 인삼 소비가 줄어도 제품 가격에는 잘 반영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농가들은 인삼 가격 폭락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인삼 가격이 여전히 비싼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마도 인삼 재고는 더 늘어날 겁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인삼을 더 찾게 할 묘수도 없습니다. 한국의 인삼업은 서서히 고사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미봉책이 아닌 근본 대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s://ift.tt/3FTOrn5
재고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재고만 2조 홍삼…농협이 나선다고 될까 [정혁훈의 아그리젠토] - 매일경제"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