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entun.blogspot.com
5월 이후 국내 코로나 확산세 꺾여
더워지며 수술용 가운으로 대체
기부용 대량구매 수요도 확 줄어
영세 봉제업체 가장 큰 피해
임가공비 못 받고 창고비 추가 부담
“방호복 외주 맡았다가 더 어려워져”
1일 서울 금천구의 한 봉제업체 창고에 방호복 상자가 쌓여있다. 김윤주 기자
지난 1일 서울 금천구의 한 봉제업체 작업실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기고 상자가 빼곡히 쌓여있었다. 두 층을 합쳐 200평 남짓한 작업실과 창고 공간도 상자로 가득했다. 상자 속 물건은 ‘레벨디(D) 방호복’. 상자 하나당 50개씩 모두 1만여장이 두 달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다른 곳에 보관 중인 물량까지 합치면 재고는 3만장에 이른다. 이 업체는 지난 4월 서울 마포구의 방호복 제조업체인 ㅈ사로부터 일감을 받아 방호복 3만5천장을 생산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나라 안팎에서 방호복 수요가 갑자기 몰리자 ㅈ사가 물량 일부를 봉제업체에 외주를 맡긴 것이다. ㅈ사는 5000장을 찾아간 뒤엔 더이상 주문물량을 챙겨가지 않았다. 임가공비 1억2천만원도 아직 지급하지 않았다. 수출 판로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다. 이날 만난 봉제업체 대표 ㄱ씨는 “아버지의 개인연금 4000만원을 깨고 은행에서 3000만원 대출을 받아 직원들 임금을 줬다”며 “더이상 인건비 지급 여력이 없어 직원들에게 한동안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때 30명이 일하던 이곳에 이날 출근한 인원은 대표를 포함해 넷뿐이었다. 최근 국내 방호복 제조업체와 봉제업체 가운데는 방호복 완성품을 창고에 쌓아두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수출이나 판매 계약과 동시에 물건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미리 충분한 물량을 생산해두곤 했는데, 갈수록 재고가 쌓여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처음으로 방호복 제조에 뛰어들었거나 급격히 제조물량을 늘린 곳이 대부분이다. 긴급 물량을 싹쓸이하듯 가져갔던 3~4월과 달리, 5월 이후로는 국외에서도 장기 비축분을 사가는 경우가 많아 계약 진행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국내 업체들이 너도나도 방호복 제조에 나서면서 가격 경쟁이 심해진 것도 이유다. 지난 3월만 해도 한 벌에 1만5천원 선에 팔리던 방호복 가격은 현재 8000∼1만원 선으로 떨어진 상태다. 5월 이후 국내 확진자 발생 추세가 2~3월에 견줘 조금 진정된데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더운 방호복 대신 수술용 가운을 입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방호복 재고가 늘어난 이유로 꼽힌다. 충남 논산의 한 방호복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날씨가 더워지면서 국내 방호복 수요가 확 줄었다”며 “평소 1년에 몇십만벌 단위로 만들다가 느닷없이 한달에 몇백만벌씩 쏟아내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대기업 등에서 기부용으로 방호복을 대량 구입하는 수요도 크게 줄었다. 대구의 방호복 제조업체 코쿤코리아 이주호 대표는 지난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던 3~4월에는 기업에서 기부하는 용도로 방호복을 많이 사갔는데 현재는 그런 주문이 거의 끊겼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방호복 제조업체들에 외주물량을 대던 영세 봉제업체들이다. 서울 금천구의 봉제업체 정해코퍼레이션은 대구의 방호복 업체 ㅁ사에 방호복 2만5천여장을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절반은 재고로 쌓아두고 임가공비 9천여만원도 두 달 이상 받지 못했다. 박정해 대표는 “방호복 대금이 안 들어와 은행에서 2천만원, 지인에게 5천만원을 빌렸고 의류 브랜드에서 받은 원단값까지 일단 직원들 월급 주는 데 써버렸다”며 “새로 발주 받은 브랜드 의류 원단값도 못 내고 있는 상태”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ㅁ사와 정해코퍼레이션을 연결해준 중개업체 대표 ㄴ씨도 “방호복 장당 50~80원씩 받기로 한 중개수수료를 전혀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ㅁ사로부터 받을 대금이 밀린 하청 봉제업체는 70여 곳에 이른다. 재고를 도저히 소화하기 어려운 봉제업체들 가운데는 아예 별도 창고나 컨테이너를 빌려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추가 부담이 드는 건 물론이다. ㅁ사와 방호복 납품계약을 맺은 금천구의 ㄷ봉제업체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내고 창고를 빌려 재고 5만5천여장을 보관 중이다. 금천구의 또 다른 봉제업체 두 곳도 납품대금 3억4천만원은 받지도 못한 채 경기도 광명시 밤일마을 인근에 컨테이너 박스 10개를 하루 5만원씩에 빌려 버티고 있는 처지다. ㄷ업체 대표는 “오히려 돈을 내면서 재고를 보관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의류 일감이 없어 조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방호복 외주생산을 맡았다가 사정이 더 어려워진 영세 봉제업체들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Let's block ads! (Why?)
July 06, 2020 at 03:00AM
https://ift.tt/2C4h4lc
재고로 쌓인 방호복 하청 봉제업체 비명 - 한겨레
https://ift.tt/3fjC4CJ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재고로 쌓인 방호복 하청 봉제업체 비명 - 한겨레"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