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들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성장성과 수익성은 물론, 안정성마저 악화하고 있다. 길어지는 경기침체에 코로나란 변수까지 만난 한국경제는 동력을 잃고 표류 중이다. 산업계 안팎에선 “하다하다 재고마저 팔리지 않는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일시적 충격이 종료되고 정상 회복되기까지’ ‘6개월 지속될 경우’ ‘올해 말까지 이어지면’ 등등의 시나리오가 등장하지만 암울하기만 하다.
# 스마트폰 알림을 설정한다. 맞춰놓은 시간에 사이트에 접속한다. “접속자가 많아 사이트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재접속해 주십시오.” 연신 새로고침을 누른다. 될 리가 없다. 2시간 후 다시 사이트에 접속한다. 이번엔 성공. 하지만 사려던 물건은 이미 팔리고 없다.
# 현장에 간다. 줄을 선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알 수 없다. 일단 줄부터 서고 본다. 한참 후 손에 번호표가 쥐어진다. 다시 기다림. “도대체 명품이 뭐기에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흔치 않은 기회다. 이 점도쯤은 기다릴 수 있다.” 두 마음이 연신 싸운다. 드디어 입장. 나도 이제 명품족이 되는 거다.
6월 3일 오전 10시, 신세계인터내셔날 온라인몰에서 면세점 재고 판매가 이뤄졌다. 15만여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됐다. 1시간 40분간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날 발렌시아가·생로랑·발렌티노·보테가베네타의 가방·지갑 등 패션 잡화를 백화점 정상가 대비 10~50%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개시 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전체 물건의 80% 이상이 팔렸다.
롯데는 6월 25일 롯데백화점 노원점, 롯데아울렛 기흥점·파주점에 면세점 재고를 풀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인원을 제한했고, 백화점 오픈 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롯데는 노원점·기흥점·파주점에 각각 750·600·660개 번호표를 배부했는데, 오픈 1시간 만에 모두 소진됐다. 면세점 재고도 5시간 만에 5억원어치가 판매됐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창고에 쌓인 면세점 재고는 소각하거나 공급자에게 반품만 가능하다. 하지만 관세청은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급감한 면세점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재고 판매를 허용했다. 10월 29일까지 면세점 재고를 내수 통관해 팔 수 있게 한 거다. 이에 따라 면세점업계가 온·오프라인을 통해 면세점 재고 떨이에 나서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4월 기준 6개월 이상 된 면세점 재고 규모는 9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창고에 재고가 쌓여가는 게 면세점뿐만은 아니란 점이다. 지난해 코스피에 상장한 685개 기업이 보유한 평균 재고자산은 9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18년엔 잘 팔리는 재고였지만 지난해 재고들은 팔리지 않아 쌓인 ‘악성재고’였다”며 “재고가 영업부진과 기업 현금보유능력을 감소시킨다”고 지적했다.
재고가 매출로 반영되는 속도를 나타내는 재고자산회전율도 악화했다. 2017년 14.3회(25.5일)였던 재고자산회전율은 2018년 13.0회(28.1일), 2019년 11.5회(31.7일)로 2년 연속 떨어졌다. 기업들의 재고부담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기업의 재고가 쌓였다는 건 성장성·수익성·안정성이 모두 악화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어서다.
“좋은 숫자가 사라졌다”
실제로 기업들의 성장성·수익성·안정성은 모두 악화일로를 걸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경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성장성을 나타내는 매출액증가율은 4.2%에서 -1.0%로 고꾸라졌다. 중소기업(3.9%→1.5%)보다 대기업(4.3%→-1.5%)의 하락폭이 더 컸다.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매출액영업이익률(6.9%→4.7%)과 매출액세전순이익률(6.4%→4.0%)도 모두 전년 대비 떨어졌다. 이 역시 대기업의 하락폭이 중소기업보다 컸다.
안정성을 엿볼 수 있는 차입금 의존도는 높아졌다. 제조업보다는 비제조업,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차입금에 의존하는 정도가 전년 대비 높아졌다. 대기업의 경우 2018년엔 차입금 의존도가 22.0%였지만 2019년엔 24.2%로 상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틸 수 있는 힘도 점점 빠지고 있다. 한경연이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685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결과,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은 기업은 143개로 집계됐다. 상장기업 5개 중 1개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부실기업이었던 거다.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기업도 2017년 28개에서 2019년 57개로 두배가 됐다. [※참고 :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기업의 채무상황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이익으로금융이자조차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본다.]
왜일까. 기업들의 매출이 정체돼 영업이익이 감소해서다. 지난해 상장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3.2% 줄었고, 영업이익은 50.1%나 쪼그라들었다. 이런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까지 터졌다. 한국은행은 “코로나 충격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은 50.5%까지 급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6월 24일 발표한 ‘2020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기업대출은 1분기 기준 1229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6% 늘었다.
코로나 충격 연말까지 간다면…
기업대출 증가세도 확대됐다. 자금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기업대출은 가파른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기업의 매출이 크게 감소하고 자금사정이 악화해 기업도산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감기업 중 유동성 부족에 처하는 기업 비중은 10.8%에 이르고, 이들 기업의 유동성 부족 규모는 54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인적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조조정 회오리가 생각보다 빨리 몰려올 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위험 요인이 생산기반을 영구적으로 훼손하지 않도록 기업부문을 지원하고,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 충격이 3월부터 본격화했기 때문에 2분기 지표는 더 나쁠 것”이라며 “이번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정부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June 29, 2020 at 08: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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