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기준법 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음을 전제로 그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이른바 ‘정리해고’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인격체인 노동자를 사용자 입장에서 ‘정리’ 대상으로 상정하는 용어라 어감이 영 좋지 않다.
징계해고는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 통상해고는 노동자가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 그 정당성이 인정되지만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는 해고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귀책사유나 의무이행 불능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고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라도, 오로지 사용자의 경영상 어려움만을 이유로 한순간에 실업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근로제공의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이 유일한 생계의 원천인 노동자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를 내걸 수밖에 없었던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절규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경영상 이유에 의해 ‘정리’된 해고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구제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25조에서 정하고 있는 ‘우선 재고용’ 제도가 그것이다. 근로기준법 25조1항은 “24조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한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한 날부터 3년 이내에 해고된 근로자가 해고 당시 담당했던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할 근로자를 채용하려고 할 경우 24조에 따라 해고된 근로자가 원하면 그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의 우선 재고용권을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형태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규정은 2007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그런데 노동자가 우선 재고용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과 시기, 사용자가 이를 불이행했을 경우의 제재 등은 전혀 규정하고 있는 바가 없어 이 규정을 통해 노동자의 우선 재고용권이 적절히 행사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지난해 이맘때쯤 대법원은, 위 규정을 토대로 권리를 주장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 사안은 같은날 해고된 2명의 해고자 중 1명이 사용자에게 우선 재고용 및 그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인데, 대법원은 해당 노동자가 과거 해고 당시 근무했던 직군에 사용자가 새로운 고용절차를 진행해 2명째 노동자를 채용한 날에 사용자의 우선 재고용의무가 발생하고 따라서 손해배상청구권도 발생한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16다13437 판결). ‘해고 당시 담당했던 업무와 같은 업무’의 범위를 같은 사건의 1심 판결에 비해 좁게 본 점(1심 판결은 해당 직군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상호 인사 전보를 하기도 했던 유사 직군에 신규채용을 했을 때 의무가 발생한다고 봤다), 최초의 신규채용이 아니라 해고된 인원과 동일한 2명째 신규채용 시점을 의무발생 시점이라고 본 점(이 논리를 100명이 해고된 사업장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사용자가 추후 99명까지만 신규채용하면 사용자는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게 된다) 등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경영상 이유에 의해 해고된 노동자가 재판을 통해 우선 재고용권을 청구할 수 있음을 명확히 선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판결이다.
지난 7월 근로기준법 25조 개정안이 발의됐다. 위 대법원 판례의 의의를 살리면서 그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① 우선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하는 시점부터 해고의 기준뿐만 아니라 우선 재고용 기준에 관해 근로자대표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는 같은날 해고된 인원만큼 사용자가 다른 사람들을 신규채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된다. ② 이 기준을 정할 때 사용자가 성·국적·신앙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가입 여부, 고용형태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통상의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가 대규모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자가 추후 우선 재고용을 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고자를 취사 고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③ 또한 위 개정안은 해고 시점, 해고 이후 3년 이내에 노동자가 질의한 시점, 경영상 사정이 호전돼 신규채용을 하려는 시점 모두에 사용자가 해고자에게 서면으로 우선 재고용권의 존재 및 그 행사 방법을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의 과태료는 덤이다. 노동자의 권리 행사 가능성을 높여 준다. ④ 해고시부터 신규채용 사이에 노동자가 새로운 자격을 취득했을 경우 사용자는 그에 상응하는 직종과 업무에 대해 재고용해야 한다. 귀책사유 없이 해고된 노동자의 우선 재고용권은 헌법 32조 근로의 권리를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에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뿐만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 역시 포함한다. ⑤ 사용자가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우선 재고용권을 갖지 않은 자를 최초로 채용했을 때부터의) 평균임금액을 손해배상으로서 청구할 수 있다. 권리의 실질화를 위해서는 의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가 필수적이다.
근로기준법 25조 개정안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것이 아니다. 19대·20대 국회에서도 (내용에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관련 개정안은 늘 발의돼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사용자의 ‘경영상 이유’가 정당화될 우려가 있는 현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많은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우선 재고용권을 구체화하고 실질화하는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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