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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후 재조립한 옷부터 진으로 변신한 맥주까지 - 조선비즈

kyentun.blogspot.com
입력 2020.12.07 06:10

[이코노미조선]
재고로 새 가치 만든다

‘재고(在庫) 비즈니스’가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뜨고 있다. 재고란 기업이 수요를 예측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 위해 보유하거나, 수요 예측에서 빗나가 팔지 못해 창고에 쌓아놓은 물건을 뜻한다. ‘이코노미조선’은 후자인 ‘판매 부진으로 발생한 재고’ 개념에 초점을 맞춰, 재고 비즈니스를 기획했다. 그동안 재고 시장은 저품질·비인기 상품을 값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기업은 재고가 생겨도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재고 시장을 외면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변수가 발생했고, 판매 부진을 겪는 기업의 창고에 재고가 급격히 쌓이고 있다. 단순히 생산 후 정가로 판매하는 일반 유통 시장만을 바라본다면 코로나 시대에 지속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재고를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기업들은 ‘계획 생산’ ‘재고 제로(0)’ 등을 목표로 하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틈을 타 재고, 리퍼브(refurbished·반품·전시 제품을 손질한 상품)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제조사의 브랜드 가치를 최소화하는 유통 방식을 무기로 한다. 나아가 재고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드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래코드(RE;CODE) 매장에서는 재고로 만든 다양한 의류를 만날 수 있다(왼쪽). 래코드 의류는 노들섬 ‘래코드 아뜰리에’에서 디자이너들과 봉제사가 하나하나 디자인·생산한다(가운데). 나이키 추리닝 바지로 만든 바람막이와 남성 정장으로 만든 여성 폴라티셔츠(오른쪽). / 안소영 기자
뽀글이 추리닝 바지를 해체해 만든 짧은 바람막이, 남성 정장 바지 여러 벌을 섞어 만든 원피스, 여성 수영복을 활용한 긴 원피스, 에코백 조각을 붙인 맨투맨티….

11월 21일 오후 7시쯤 방문한 서울 한남동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upcycling·새 활용) 브랜드 ‘래코드(RE;CODE)’ 매장. 약 70벌의 의류와 여러 종류의 가방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질의 조합이지만, 눈으로 보니 독특하면서도 조화로웠다. 버려질 뻔한 재고 의류를 패치워크(색깔·무늬·크기·모양 등이 다른 여러 가지 천을 이어붙이는 수공예) 식으로 새롭게 조합해 선보인 상품이다.

일부 상품에는 상품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 웃옷에는 ‘남성 정장 재킷을 해체해 앞판은 사용하고 뒤판은 없앤 후 부드러운 배색감이 있는 조각을 붙여 앞뒤가 다른 형태의 상반된 느낌을 줬다’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봉제사가 재고를 하나하나 조합해 만든 제품이다 보니, 똑같은 무늬의 옷이 많지 않았다. 옷마다 ‘한정판(Limited)’ ‘6벌 제작(Only 6 pieces were made)’이라는 표시가 돼 있어 ‘세상에 몇 없는 특별한 옷’이라는 느낌을 줬다.

일반적으로 의류는 생산량의 70%만 출시된 해에 판매돼도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받는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던 옷은 시즌이 지나면 아웃렛에서 판매되고, 출시된 다음 해부터는 직영 할인점과 자사 몰에서 팔린다. 이 과정을 거치고도 판매되지 않은 3년 차 재고는 소각장으로 향한다. 코오롱 래코드 디자이너들은 동탄 물류센터에 소각을 위해 쌓여 있는 재고를 골라와 ‘리디자인(Redesign)’하고 수작업으로 바느질을 해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시키고 있다.

래코드 옷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조명받고 있다. 맨투맨티를 구입한 내승한(28)씨는 "올해 초 우연히 래코드 매장을 방문했다가 관심이 생겨서 시즌마다 매장을 방문해 래코드 의류를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소라(여·37)씨는 "디자인이 독특해 구경하게 됐는데, 재고를 활용한 의류라니 더 뜻깊다"면서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볼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대량생산이 어려워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라는 점은 아쉽다. 코오롱 래코드의 코트는 70만~80만원대, 셔츠·치마는 20만원대, 맨투맨티는 10만원대다. 김유동 래코드 매니저는 "2018년까지만 해도 ‘쓰레기를 가져와서 만든 옷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짜증을 내는 손님도 종종 있었는데 요즘에는 일부러 찾아오거나, 주변에 소개해주려고 지인들을 데려오는 단골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고에 생명을 불어넣는 패션 브랜드가 코오롱FnC뿐만이 아니다.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와 ‘아워레가시’는 올여름 각 사의 재고를 활용한 협업(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루이뷔통은 지난해 브랜드 최초로 친환경 상품인 ‘비 마인드풀’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스카프를 만들고 남은 실크 소재를 활용한 상품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팔찌, 목걸이, 벨트다.

◇와인이 손 세정제로, 맥주가 진으로 변신

최근에는 주류 업계에서도 재고 활용 방안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 농가는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국의 관세 부과로 재고를 처리하기 어려워지자, 와인을 손 세정제, 의료용 에탄올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농가도 손 세정제를 만들었고, 스페인 농가는 요양원, 병원 등에 와인으로 만든 손 세정제를 기부했다.

일본 맥주 기업 ‘기우치 브루어리’는 올해 코로나19로 맥주 판매가 줄자 재고 맥주를 모아 재증류해 수제 진(gin)을 만들었다. 일본 현지 술집들이 남은 맥주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기우치 시설로 보내면, 브루어리가 진으로 만들어서 돌려보내는 식이다. 맥주보다 유통기한이 더 길기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고민을 다소 덜 수 있다.

◇plus point

[Interview] 11번가 임혜진 매니저
"못생김을 설명합니다" 재고 마케팅 나선 11번가

임혜진. 11번가 신상품기획팀 MD / 11번가
그야말로 B급 상품, 재고의 전성시대다. 11번가가 내놓은 못난이 농산물 브랜드 ‘어글리러블리’가 그 예다. 어글리러블리는 재배 과정에서 흠집이 났거나 모양과 색깔이 고르지 못한 ‘못난이’ 농산물을 모아 선보이는 브랜드다. 올해 4월부터 11월 20일까지 판매액만 14억원, 상품 수로 약 11만 개다. 지금껏 진행한 타임딜 행사는 한 번도 완판에 실패한 적이 없다. 못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외당했던 과일이 날개 돋치게 팔리는 인기 상품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이코노미조선’은 임혜진 11번가 매니저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재고 마케팅을 파헤쳐봤다.

못난이 농산물 브랜드 ‘어글리러블리’를 출시하게 된 이유는.
"2014년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점 인터마르셰가 진행한 ‘못생겨서 버려지는 농산물’ 이색 판매 행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이 유통 업체는 우스꽝스러운 감자, 기괴한 모양의 사과를 포스터로 제작하고 못난이 농산물로 만든 쥬스, 수프를 무료로 제공해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바꿨다. 이를 보고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장에서 제작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못난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농가들도 못생긴 농산물은 헐값에 판매하거나 2차 가공하거나 버리고 있었다. 못난이 마케팅으로 아까운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비자, 공급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농가 수익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샀는데 제가 도움을 받은 기분이네요’ ‘못생겼다더니 맛만 좋네요’ 등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편견을 깼다거나, 착한 소비에 동참했다는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못난이 농산물은 기존에도 판매하는 기업이 많았다. 어떻게 인기를 끌었나.
"이전에도 못난이 고구마, 사과는 많이 판매되는 편이었는데, 리뷰가 좋지 않았다. 상세페이지에 예쁜 농산물 사진만 올려놓으니, 소비자들이 상품을 받고 ‘속았다’ ‘별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외형 측면에서 소비자의 기대치를 완전히 낮추자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자에게 샘플을 받아 품질 상태를 확인할 때 가장 못생긴 농산물을 골라서 보내 달라고 했다. 상품 소개 페이지를 만들 때 일부러 더 못생긴 상품만 골라서 소개하기 때문에 반품률이 낮은 편이다. 또 농산물이 못생긴 이유를 가능한 한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한다. 햇볕에 그을려 까매진 귤, 영양 과다로 모양이 더 울퉁불퉁한 킹스베리 딸기, 하우스 비닐에 접촉해 물때가 생긴 참외 등이다. 다만 ‘아무리 못생겨도 맛은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외형도, 맛도 별로라면 소비자의 편견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못난이 농산물을 판매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기도 했나.
"못난이 수산물로 품목을 확대하려고 한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너무 커서, 오징어 다리가 한두 개 없어서 홈쇼핑, 대형마트 납품 기준에 미달하는 수산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산물은 판매하지 않고 버려지거나, 산지에서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소비돼 아깝다고 생각했다. 1인 가구가 먹기 적합한 작은 생선, 정상품보다 큰 사이즈 생선 등을 판매하고 싶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재고 비즈니스] ①위드 코로나 시대 만개한 재고 비즈니스
[재고 비즈니스] ②<Infographic> 재고 시장이 뜬다
[재고 비즈니스] ③<르포> 재고가 생활이 되다
[재고 비즈니스] ④<케이스 스터디> 역물류 전문 기업 美 ‘옵토로’ 성공 비결
[재고 비즈니스] ⑤<전문가 기고>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재고 비즈니스] ⑥<Interview> 재고 쇼핑몰 ‘리씽크’ 김중우 대표
[재고 비즈니스] ⑦<Interview>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
[재고 비즈니스] ⑧재고로 새 가치 만든다
[재고 비즈니스] ⑨재고 해결하다, 기업들 착해졌다
[재고 비즈니스] ⑩<Interview> 권오경 인하대 경영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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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3, 2020 at 03: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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